수백만원 컨설팅·매출 뻥튀기…'진흙탕' 된 창업지원금 쟁탈전 [긱스]

입력 2024-03-06 18:03   수정 2024-03-14 16:16

“1회 120만원, 3+n회 멘토링, 반드시 합격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스타트업 대표 A씨는 얼마 전 개인 블로그에 예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글을 올렸다. A씨는 정부 창업성공패키지 사업에 선정된 경험이 있다. 그는 “좋은 아이템을 갖고도 정부지원사업 경험이 부족해 떨어지는 대표들이 많다”며 “어려움을 겪는 대표들에게 선배가 노하우를 전수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주요 창업지원 프로그램 일정이 시작되면서 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한 창업자들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등 정부의 사업화 지원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최대 1억~3억원 수준이다.
○수백만원 ‘창업컨설팅’

6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프리랜서마켓플랫폼 크몽은 정부지원사업 관련 페이지를 따로 개설해 운영 중이다. 메인 페이지에 등록된 관련 상품만 40개가 넘는다. 2만~3만원 안팎인 합격 사업계획서 공유부터 250만원대 전문 컨설팅까지 가격대도 다양하다.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높아질수록 대면 컨설팅과 섬세한 피드백이 더해진다”며 “아이템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 함께 만들어주는 상품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플랫폼에 컨설팅 상품을 등록한 정부지원사업 심사위원 출신 B씨에게 예비창업패키지에 지원하기 전 컨설팅이 꼭 필요하냐고 문의했다. B씨는 “정부사업에 처음 지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처음이라고 하자 B씨는 “경험이 없다면 컨설팅은 거의 필수라고 보면 된다”며 “심사위원 경력을 녹인 컨설팅이라 안 하는 사람이 손해”라고 답했다.

컨설팅 착수금 명목으로 수십만원을 받은 후 사업에 합격하면 지원금액의 10~20%가량을 수수료로 떼가는 전문 업자들도 있다. 예비창업패키지 평균 지원금액이 5000만원, 초기창업패키지가 7000만원인 것을 감안할 때 수백만원의 수수료를 내는 셈이다. 스타트업을 대리해 지원을 따낸 후 ‘먹튀’ 하는 사례도 간간이 나온다.

한 예비창업자는 “지원금을 받을 수만 있다면 손해는 아니기 때문에 이 방법을 선택하는 창업자들이 있다”며 “컨설팅이란 명목 아래 100% 대필도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예산 반토막에 경쟁 치열
창업지원사업에 ‘지원금 사냥꾼’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사업 수가 많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 등에 따르면 올해 창업지원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사업을 포함해 397개. 이 사업들의 예산을 합치면 3조7000억원(융자·보증 포함)이다.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창업도약패키지, 창업중심대학, 청년창업사관학교 등이 예산이 크고 지원 대상자가 많은 사업이다. 이들 사업 중 상당수가 1~2월 신청을 받아 이달부터 본격 심사에 들어간 만큼 창업자들에겐 지금이 초기 사업비 확보를 위한 ‘골든타임’인 셈이다.

주요 창업 지원 예산이 매년 줄어드는 추세라 경쟁률은 올라가고 있다. 초기창업패키지는 2021년 900곳을 지원했지만 올해는 590개사만 뽑는다. 예산도 같은 기간 1002억원에서 538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예비창업패키지 역시 지원 대상자를 2021년 1530명에서 올해 930명으로 축소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민간 주도 성격이 강한 팁스(TIPS) 사업 등의 예산이 늘면서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예산은 크게 구조조정됐다”고 설명했다. 창업자 수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지원금 총액이 줄면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청년창업사관학교와 글로벌창업사관학교는 올해 모집에 4799명이 몰렸다. 전체 경쟁률이 5.3 대 1로 지난해(3.6 대 1)보다 크게 뛰었다. 중진공 관계자는 “글로벌창업사관학교 경쟁률은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예비창업패키지는 일부 주관기관 경쟁률이 30 대 1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 원정 가는 창업자들
지원 전형과 주관기관을 두고도 창업자 간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지원사업에 동시에 신청할 수는 있지만 중복으로 혜택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 한 사업에 먼저 합격해 협약을 맺었다면 다른 지원사업은 포기해야 한다. 매년 전형과 주관기관별 경쟁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전형을 택하는 게 중요하다. 한 창업자는 “창업중심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협약하는 순간 예비창업패키지는 바로 탈락 처리된다고 들었다”며 “여러 사업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예 연고가 없는 지역의 주관기관에 신청서를 내는 창업자도 있다. 서울·경기 지역에 ‘알짜 창업자’가 몰려 합격이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다. 예비창업패키지 주관기관은 전국 27개, 초기창업패키지는 20곳이나 된다. 2021년 예비창업패키지 평균 경쟁률은 5.5 대 1이었는데 서울 최고 경쟁률은 22 대 1에 달했다. 기관마다 장단점과 특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기관을 택하는 게 중요하다.

창업자들 사이에선 이미 사업계획서 검토와 발표 팁 공유 등을 위한 모임이 활발하다. 한 창업자는 “최근 심사에서 회사의 고용 창출 역량을 중요하게 본다고 들었다”며 “발표 때 이 부분을 특히 강조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예비창업자는 “예상 매출이나 고정비를 사업계획서에 어떻게 적어낼지 고심이 컸다”며 “보수적으로 본 예상 매출보다 150% 정도는 높여 적는 게 좋다는 팁을 얻어서 그대로 했다”고 말했다.
○“브로커 생태계 깨기 어려워”
이들 창업지원사업은 그동안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사업 중복 논란이 있는 데다 사업비를 ‘먹튀’ 하는 사례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원받은 창업자들이 회사 운영을 오래 하지 못하거나 사실상 ‘좀비기업’이 되는 경우다. 한 예비창업자는 “대학생이 스펙용으로 지원금을 받아 창업만 하고 취업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며 “진정성을 가진 창업자들이 오히려 뒤로 밀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 브로커들이 남의 명의를 빌려 사업자금을 따내고 나눠 가졌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정부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미 형성된 ‘브로커 생태계’를 깨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의 사업계획서를 베낀 게 적발되면 3년간 중기부 창업지원사업에 지원할 수 없고 사업비는 전액 환수된다. 부정 수급이 확인되면 받은 지원금의 다섯 배 수준의 제재부가금이 부과된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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